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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대리 직장 살아남기입니다. 오늘 알아볼 내용은 잊혀진 영웅이자 강동 6주 흥화진을 끝까지 지내낸 영우 양규장군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거란의 2차침입의 내용은 시험문제에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거란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고려군도 30만대군과 양규와 강조를 잃었을만큼 큰 피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려군의 큰 피해가 있었지만, 양규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거란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고려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며 존경받아 마땅한 분으로 생각이 듭니다. 과연 어떤 분이실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생과정(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음)

거란과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양규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며, 6대 왕인 성종의 말년이나 목종의 재위기간에 관직으로 나섰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관에서 무관(서북면 도순검사)

양규는 목종시절에 관직을 맡았고, 그 중에서도 형부낭중이라는 직위를 맡았다고 합니다. 형부낭중은 고려시대의 관직 중 하나로, 중앙 관료제의 일원으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흥화진(오늘날 평안북도 의주(의 서북면 도순검사가 되어 흥화진을 지키고 있을 무렵 거란의 6대 황제(야율융서(의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흥화진(평안북도 의주)과 야전에서의 활약

[흥화진에서의 활약]
1010년 11월 17일부터 일주일동안, 거란의 황제의 휘하 40만명의 대군이 고려의 흥화진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은 강력은 군사들을 보유했으며, 그들의 목표는 흥화진을 점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양규장군이 지휘하는 3천명의 고려군을 이 거센 공격을 막아냈습니다.(고려군 1명당 약 133명의 거란군을 막은 것)


이후, 거란의 성종은 사로잡은 고려 농민들을 보내 투항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흥화진 장수들은 정중한 말고 항복을 거절하였고, 야율융서는 20만원 병력을 무로대(평안북도 의주 남쪽 부근)에 주둔시킨 후 통주성의 삼수채에 주둔하고 있는 강조의 30만 병력을 무너트립니다.


성종은 죽은 강조의 서신으로 위장한 항복문을 흥화진으로 보냈는데, 양규는 '우리는 임금의 명을 받고 왔으니 강조의 지시를 받을 수 없다'라고 일축하였습니다.

이후, 거란군은 통주성을 공격했지만,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거란군은 곽주성을 함락시키고 6,000명의 수비군을 남겼습니다. 이는 곽주를 중간 기지로 활용하여 빠른 직공을 위한 준비로 보입니다. 거란군은 수도 개경으로 이동하는 길에 서경을 공격하지만, 이 역시 함락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야전에서의 활약]
1010년 12월, 양규장군은 결사대를 이끌고 흥화진에서 통주성까지 이동하여 군사를 수습하였습니다. 거란대군에 의해 흥화진이 포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수의 병력으로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통주까지 남하하였습니다.

양규장군은 걸나군이 점령한 곽주성을 야밤에 습격하여 탈환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 백성 7,000명을 통주로 이동시켜 통주성의 방어를 강화하였습니다. 양규장군은 야전에서 지속적으로 거란군에게 타격을 가하면서 고려백성들을 구출하였습니다. 그는 거란군을 압박하다가 김숙흥부대와 합류하였고, 그들은 거란군을 추격하면서 여러차례 전투를 치뤘습니다.

 

양규장군과 김숙흥은 야율융서의 친위군을 맞아 화살이 떨어지고 병사들이 다 쓰러질때까지 말 그대로 처절하게 전투에 임하였고, 마침내 힘이 다해 양규와 김숙흥 이하 고려군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구출한 고려백성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들이 구출한 포로들은 무려 3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양규장군의 후손(양대춘, 양제보)

 

양대춘은 아버지의 공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안북대도호부사를 거쳐 재상까지 지냈습니다. 그의 신뢰도는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도 두터웠습니다. 양규의 증손자 양제보는 별무반 신기군 직장의 지위를 지녔으며, 예종에게 은가구를 하사받았습니다.

 

결론

수도인 개경이 함락과 강조의 고려본군이 전멸, 그리고 국왕이었던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의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거란의 2차 침입을 무사히 막고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양규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규장군은 그의 뛰어난 공로로 인해 국가유공자로서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1024년에는 삼한벽상공신이라는 공신호를 추증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홍씨에게는 매년 쌀 100섬을 지급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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